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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M magazine_인터뷰_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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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사진작가 이재호 이미지 1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로스를 기억하는가.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점점 더 높은 곳을 향해 날아가다 태양 가까이에 이르러 날개가 녹아 바다로 떨어져버린 청년이다.
사진가 이재호가 그를 꼭 닮았다. 성공을 향해 앞만 보고 내달렸던 지난날이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그는 최근 세포 하나하나를 ‘힐링’하며 다시 한 번 비상하고 있다. 성공의 태양이 아닌 행복을 향해.

사진작가 이재호 이미지 2

마음 속에 감춰 두었던 사진가의 꿈을 이루다

사진작가 이재호 이미지 3

내로라하는 스타들과 광고·패션 화보를 작업하는 유명 포토그래퍼. 이재호 작가의 명함이다.
이런 분야의 사진가에게는 으레 고집스럽고, 개성 강하고, 거만할 것이라는 편견이 따라붙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와 몇 마디를 주고받은 후 이러한 편견은 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따뜻한 사진가.
그를 표현하기에 이보다 좋은 단어는 없을 것 같다.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처음 카메라를 쥐었던 어린 시절로 안내했다.

사진작가 이재호 이미지 4

“초등학교 6학년 때 짝사랑하던 여자 아이가 있었어요. 졸업을 앞두고 그녀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사진을 찍어두자고 마음먹었지요.
당시 출판업에 종사하시던 아버지에게 여러 대의 카메라가 있었거든요. 장남인 제게 아버지께서 카메라에 대해서도 후한 편이셨습니다. 사용법이 가장 간단한 카메라를 한 대 골라 가슴에 품고 그녀를 찾아갔어요.
결국 고백은 못하고 몰래 숨어서 그녀의 모습만 담아왔지만, 오래도록 간직하고 꺼내보며 사춘기의 열병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무의식 중에 사진이 가진 강력한 힘을 느꼈던 것 같아요.”

시간이 흘러 그가 다시 카메라를 잡은 건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였다. 학업 성적이 꽤 좋았던 그는 한 시험에서 전교 1, 2등을 다투던 친구와 격차가 벌어지자 승부욕이 발동했다.
그 후 10일 동안 잠도 안자고 무식하게 공부만 했다. 지나친 과욕은 결국 그를 시신경이 마비되는 지경까지 몰고 갔다.

“당시 어머니의 친구분 중에 아마추어 사진가가 계셨어요. 그분은 제가 아픈 걸 보더니 저희 부모님에게 저를 바깥으로 데려가 사진을 찍게 해보라고 권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따라 산에 오르게 된거에요. 조작 법도 익숙치 않은 카메라를 목에 메고요.
숲에 가니 아름다운 꽃과 나무, 하늘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신기하게도 이것들은 오랫동안 바라보아도 눈이 아프지 않더라고요. 그 순간 자연에 있으면 스스로 건강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동안 내가 왜 30cm 이내의 활자에만 눈을 맞추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사진학과에 진학을 해야겠다고 소리없이 결심 했습니다. 아쉽게도 그때 찍은 사진은 남아있지 않아요. 뷰파인더로 바라만 봤을 뿐 셔터를 누를 용기가 없었거든요.”

사진작가 이재호 이미지 5

사진을 전공하겠다는 그의 결심은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무역학을 전공하게 된 그는 고민 끝에 사진병으로 군입대를 지원했다.
2년간의 사진병 생활은 남다른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와 세상 사이에 카메라라는 매개체가 확고히 자리 잡은 시간이었다.

“제대 후 대학 재입학을 위해 사진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곳에서 여러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지요. 김중만 작가님도 그 때 알게 된 겁니다. 어느 사진보다도 그의 임팩트 있는 사진이 와닿더라고요. 첫눈에 패션 사진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이후 김중만 작가님의 제자로 1년간 작업을 도왔어요.”

김중만 작가의 작업실에서 나온 그는 2002년 패션 사진을 공부하기 위해 홀로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당시 패션 사진이 최고인 줄 알았고, 그것에 미쳐있었던 때였다.

런던예술대학교에 편입해 졸업 후 2년간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기량을 쌓았다.

“사진가들은 커머셜과 파인아트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작업합니다. 그게 맞는 것이라 생각해요. 결국은 어느 쪽이든 ‘사람’이 중심이 되는 작업이잖아요.”

그가 국내에서 패션과 광고, 방송을 넘나들며 활동한 지도 어느덧 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는 더 이상 ‘상업사진가, 패션사진가 이재호’라 불리지 않는다 해도 미련이 없을 만큼 최선을 다했다.

“유학을 떠나기 전부터 지난해까지 적어도 10년 이상 패션과 광고 등 커머셜 작업을 하며 앞만 보고 달려왔어요. 온몸의 힘을 쥐어짜내다시피 한 시간들이었지요.
제 자신을 열차에 비유한다면, 마치 한국산 열차에 영국산과 일본산 부품 등을 마구 붙여서 겉이 화려한 기차였던 것 같아요. 속력이 붙을수록 사람들은 더욱 멋있다고 해주니, 제 스스로를 정비할 틈도 없이 무조건 더 크게 몸집을 불리고, 더 빠르게 달린 겁니다.
오직 사진작가 이재호로서만 영혼을 불태우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던 지난해 갑자기 열차가 고장이 난 겁니다. 건강을 해친 다음부터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찾아왔어요.”

사진작가 이재호 이미지 6

그는 자신을 돌볼 틈이 없었다. 아니 돌봐야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최근 6년여의 시간들이 그를 단번에 멈춰 세운 원인이 되었다.

볕이 잘 들지 않고, 공기마저 탁한 지하 스튜디오를 전전하며 한시도 쉬지 않고 일에 몰두한 탓이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의 건강은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그리고 올해 1월 이재호 작가는 처음으로 자신을 정비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커머셜 사진계에 한 획을 그은 젊은 작가

사진작가 이재호 이미지 7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이재호 작가는 2006년부터 국내 커머셜 사진계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맨 처음 리처드 용재 오닐의 <라크리메> CD앨범 재킷을 맡아 이름을 알렸다.

“외국에서 갓 돌아와 트렌드에 가장 민감했을 때 작업 해서였는지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습니다. 이것을 좋게 평가해주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라크리메> 작업을 시작으로 후에 발매되는 클래식 앨범들의 재킷 사진 분위기가 확 바뀌었지요. 당시 엔터테인먼트 사진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했을 정도니까요. 이후로도 걸출한 아티스트들의 요청이 끊이지 않아 3년 정도는 꾸준히 재킷 촬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오래지않아 ‘한국적 고정관념’이라는 벽에 부딪히게 되었다.

국내 사진가 중에는 커머셜과 파인아트를 극명하게 구분 짓고, 이 둘을 동시에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는 이것을 진정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바쁜 와중에도 잊지 않고 일년에 한 번 이상 전시에 참여했다.

“패션 사진을 전공했으면 그 분야에서만 전문가이고, 그것만 할 줄 안다는 고정관념이 있더라고요. 커머셜과 파인아트의 구분뿐 아니라 커머셜 작업 안에서도 패션과 제너럴, 포트레이트, 방송 등으로 또 다시 나뉘고요. 외국의 경우는 다릅니다. 특정적으로 구분짓지 않고 모두 조화를 이루지요.”

자연이 건네는 터치를 힐링사진으로 담다

사진작가 이재호 이미지 8

“건강도 되찾고, 또 다른 작업을 하기 위해 강원도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커머셜 작업의 양을 예전보다 많이 줄인 상태예요. 지금이 제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인 것 같습니다. 지난 6년간 잊고 지냈던 계절 변화를 온몸의 감각으로 다시 느끼니 기분도 너무 좋고요. 단 6개월 만에 모든 게 바뀌었습니다. 치유의 태양과 공기, 물, 자연식, 운동, 웃음, 신앙 총 7가지가 저를 기적적으로 일으켜주었네요. 다시 태어난 기분입니다.”

고2 때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자연을 찾아가 건강을 되찾았던 소년. 그가 어른이 되어 카메라를 메고 자연의 품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도 아픈 그를 낫게 한 것은 ‘자연’이다.

사진작가 이재호 이미지 9

“눈에 보이는 자연만을 담는 게 아니라, 자연이 건네는 치유의 손길을 사진에 담아내고 싶어요. 그것은 뷰파인더를 눈으로 보지 않고 가슴 위에 카메라를 얹어 셔터를 누르는 것 만으로도 담을 수 있지요. 그동안 광고주를 비롯해 남을 만족시키는 작업을 해왔다면 이제는 진정으로 나의 행복을 위해 나만의 이야기와 감정을 담아볼래요. 초등학생 시절 ‘조현정’이라는 친구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달려가던 그 날처럼요.”

앞으로의 작업은 구글플러스와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인터넷에도 공개될 예정이다. 그의 ‘강원도의 일상’을 담은 사진은 영어와 일어 등 다양한 언어로도 제공할 계획이라고 했다.

사진작가 이재호 이미지 10

“강원도에서의 작업은 ‘힐링’을 주제로 합니다. 병상에 누워있는 누군가가 ‘하루 빨리 저 사진 속의 아름다운 자연을 만나러 가고 싶다’라고 희망을 갖게 하는 그런 사진을 찍고 싶어요.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이들을 사진으로 돕는다는 것은 어쩌면 사치일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봉사와 헌신에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사진 강의도 다시 하고 싶어요.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땅끝 마을이라도 가볼 생각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가능한 한 많이 소통하고 싶거든요. 마음 먹은 대로 세포가 변화하고 있는 것인지 나날이 행복하고 건강해지는 기분입니다.”

그는 강원도를 찾은 순간부터 줄곧 사진작업을 스마트폰카메라로 해오고 있다. 이달부터는 캐논 카메라를 사용해 작업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사진작가는 어떠한 이야기와 감정을 담을 것인지 결정한 후 이것을 사진에 잘 표현해내야 해요. 사진가가 표현한 바가 제대로 전달되어야 예술인 거지요. 난해하고 어렵기만한 작품은 작가가 자기 자신의 표현적 자유를 향유하는 것 밖에 될 수 없어요.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와 감정선을 담아내는 매개체는 스마트폰카메라 또는 똑딱이, 필름카메라, 미러리스카메라 중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지요.”

그가 즐겨 사용하는 카메라 장비도 10년 이상된 것들이 많다. 필요한 장비는 그때그때 빌려 쓰는 편이라고 했다.

사진작가 이재호 이미지 11

“사진의 형식과 본질은 구분되어야 합니다. 사진가는 작업을 할 때마다 원고의 최종 쓰임새를 예측해서, 컬러나 사이즈를 순간적으로 선택하거든요. 카메라는 그에 맞게 고르면 됩니다. 사진을 찍는 일은 운전과도 비슷해요. 예를 들어 3억짜리 벤틀리를 구입했는데 혹여나 사고라도 날까봐 핸들만 붙들고 불안해하며 제대로 달려보지 못하면 소용이 없잖아요. 같은 이치입니다. 카메라 또한 자동차와 같은 소모품일 뿐이에요. 마음속으로 내 작품의 규격이 어느 정도인지 먼저 결정하고 나면 카메라의 선택도 한결 수월해집니다.”

사진작가 이재호 이미지 12

사진
이재호
런던예술대학교의 London College of Fashion에서 패션사진학을 전공했다. 서울예대 사진학과에서 패션사진과 포트레이트 사진을 강의했고, 스튜디오 레트로를 운영하며 Anycall, hauzen, CASS, 신한카드, 현대자동차 등 일반광고 작업과 <VOGUE>, <ELLE>, <GQ>, <ARENA> 외 다수 매거진의 패션광고와 화보, 리차드 용재 오닐, 조수미와 같은 아티스트의 CD앨범 및 여러 드라마와 영화의 포스터 사진 작업을 해오고 있다. 또한 ‘SEOUL PHOTO 2009’, ‘대한민국 광고사진가전’, ‘서울 국제 사진 페스티벌’, ‘ 핑크리본 캠페인 2011’ 그리고 개인전 ‘The Lifescapes’를 통해 작품을 선보였다. www.iamcheho.com
김민경 기자
제공
DCM (http://www.dcmcafe.co.kr/)
발행2012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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